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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만이 가명이라고?
미소 띤 얼굴로 내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어서 오시죠, 선배.” 우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앉으며 대꾸했다.
“···그놈의 선배 소리는 그만하지 그래.” 그 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굳이 원한다면 그래주지, 우. 만.” “···!” “나도 사실 이쪽이 편하고 말이야.” 우만은 잠시 어이없어하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아까 그 모습은 내숭이었다 이건가.” “당연한 거 아닌가? 뭐, 원한다면 귀여운 후배 노릇을 해줄 수 있지만 말이야.” “···절대 사양하지.” 미리 우려둔 차를 한 잔 따라 그의 앞에 건네자, 우만이 고개를 저었다.
“마시지 않겠다.” “좋을 대로 해.” 나는 남부 어느 지방의 특산품이라는 고급 차의 향기를 기분 좋게 음미했다.
차를 홀짝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저 혼자 몸이 달아 있던 우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대체 뭐하자는 거지?” “뭐하자는 거냐니.” “그···.” 입술을 지그시 깨물다가 말을 잇는다.
“어떻게 안 거냐.” 나는 바로 대꾸하는 대신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꽃 향기가 과연 일품이구나.
여유가 넘치는 내 태도를 원망하듯 바라보던 우만이 보채듯 말했다.
“···내게 여동생이 있음을, 어떻게 알았냐는 거다.”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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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찻잔을 오픈홀덤 탁자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어떻게 알았을 것 같은데?” “···내가 말장난하러 온 것 같나?” 우만은 치밀어오르는 부아를 간신히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말장난할 생각으로 네게 접근한 건 아냐. 그저···.” 나는 흥분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은 뒤, 그와 두 눈을 마주쳤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는 거지.” “···!” “내가 알기로 그다지 많지 않을 텐데 말이야.” 우만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분이 세이프게임 그러실 리가···.” 저 반응을 보면 확실하다.
우만이 알기로, 팰러스 세이프파워볼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는 분열을 조장할 만한 미끼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팰러스 형님이 말해주신 것은 아니야. 형님과 나 사이가 어떤지는 우만 네가 더 잘 알 텐데?” “···.” “하지만.”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팰러스 형님과 파워볼사이트 네가 신뢰하는 다른 두 명은 어떨까?” “···!” “형님의 입에서 말실수처럼 흘러나온 정보가, 그 둘은 네 ‘약점’이라는 걸 파악한 거고.” 나는 일부러 말을 끊은 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몹시 초조해하는 우만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둘 중 한 명이, 파워볼게임사이트 모종의 거래를 요구하며 내게 그 정보를 넘긴 거라면?” “그럴 리··· 없다.” 우만은 간신히 이를 부정했으나, 그의 반응을 보면 내 말에 반쯤 넘어온 게 분명했다.
애써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을 거다.
‘브렉과 타릭 둘 중 대체 누가 나와 접촉했을지 궁리하느라 말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내 말을 믿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다만···.” 안락의자에 깊이 기댔던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말을 이었다.
“지금 같은 편에 있다고 해서 영원히 같은 편이리라는 순진한 착각은 하지 말라는 거다.” “하, 누가 누구에게 충고를-” “네가 탄 배가 이미 기울어가는 배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 말에 우만의 입이 다물어졌다.
“기울어가는 배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누군가가, 너의 ‘치명적인 비밀’을 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단 걸 잊지 말라는 것뿐.” “···.” 우만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기울어지든 아니든 상관없다. 팰러스 님은 내 은인이시고, 나는 그분을 평생 따를 거니-” “네 은인이라는 그분한테 너는 그 정도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우만 넌 나중에 팰러스를 배신하고 말이지.
“네게 그렇게나 중요한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주변에 흘리는 걸 보면 말이다.” 우만은 대꾸하지 않았다.
침착을 유지하는가 싶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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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쥐어짠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그걸 모르진 않아.” 이거 의외인데.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며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도박을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안전하게 가야 할까.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내 선택은 못 먹어도 고였으니.
“여동생이 죽은 것과··· 팰러스가 네 은인이 된 것과 관계가 있나?” 그 말에 우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입술까지 부르르 떨며 아무 말도 못하다 잠시 후에야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답할 의무 따윈 없다.” 대답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관계가 있다는 얘기로군.’ 더불어, 우만의 여동생이 죽은 것 역시 확실했다.
‘원작에서 여동생이 있었다, 라고 과거형 표현을 쓰길래 던져본 것뿐인데.’ 우만은 자신이 미끼를 덥석 물었음은 상상도 못 하는 눈치였다.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 불쾌감을 감추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놈에게 한 마디 해줬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변인들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씩 웃자, 우만이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고는 방에서 휙 나갔다.
“디터, 발닉.” 나는 한쪽 벽에 커다랗게 들어서 있는 벽장을 향해 말했다.
“이제 나와도 좋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벽장 문이 쿵, 하고 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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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사내 두 명에게는 몹시 좁은 공간에 몸을 구기고 있던 둘이 튀어나왔다.
“주군, 대화는 잘 하셨는지요.” “어후, 삭신이 다 쑤시는군요.” 몇 시간 전.
디터와 발닉은 내 계획을 듣고 자신들이 반드시 보초를 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어떡합니까!’ ‘혹시라도 상대가 공격할 생각으로 오면···.’ 하지만 대놓고 두 사람을 이 방에 놔두면 우만의 경계심이 더 높아질 터였다.
결국 궁리 끝에 내놓은 방안이···.
‘저희 둘이 이 벽장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떨까요?’ ‘···너랑 내가?’ ‘네. 비좁기는 하겠지만 좀만 참으면···.’ ‘후, 충성스러운 가신이 된다는 건 이리도 어려운 일인가···.’ 나와 우만 사이에 혹시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디터와 발닉이 내내 벽장 안에서 대기했던 것.
“고생했다.” 둘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발닉을 향해 말했다.
“이다음은 자네가 활약할 차례야, 발닉.” “제가 활약하다니요?” 어리둥절해하는 발닉을 보며 덧붙였다.
“아니, 일단은 카렌이 먼저 활약해야겠군.” * * * 나를 포함한 우애단 단원들은 라페스 자작가에 사흘 정도 머물기로 했는데, 지금은 둘째 날 오전이었으며.
나는 리암과 앨빈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카렌을 따로 불러내 부탁한 참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을 요약하자면···.” 헌데 카렌은 뭔가가 맘에 안 드는 눈치였다.
“결국 날 여기 와서 머물라고 한 건, 다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설마 그냥 놀러오라고 했겠어?” “···기대한 내가 바보였구나.” 기대하다니, 뭘 기대해?
‘그나저나 얜 아침부터 뭘 이렇게 차려입었대.’ 어제 장밋빛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참석객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카렌은, 오늘 또 처음 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제야 사교모임 자리이니까 신경을 썼겠지만···.

‘오늘은 별다른 일정도 없는데 굳이 왜?’ 그런 내 생각이 눈빛에서 드러났는지, 카렌이 돌 씹은 얼굴로 말했다.
“···옷 갈아입을 거야.” “아니, 뭐 상관은 없는데.” “네가 부탁한 거 하려면 갈아입어야 하거든!” 오늘 따라 왜 이리 날카로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분을 좀 풀어줘야겠다.
“내가 항상 고마워하는 것 알지?” “아, 몰라. 말도 하지 마.” “넌 내가 아는 최고의···.” “···도적 같은 소린 여기서 입에 담지도 마.” 그 말 하려고 한 거 아닌데.
카렌은 소리 죽여 대꾸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네가 부탁한 거 들어주러 간다!”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카렌의 일 처리는 확실하다.
국내 최고의 도적을 맨입으로 부릴 수 있다니.
‘내가 가신 하나는 잘 뒀다니까.’ 흐뭇한 마음에 미소 짓자 카렌이 미간을 좁혔다.
“···너 방금 표정 되게 마음에 안 들었거든?”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마.” 카렌은 그 즉시 제 방으로 가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넌 딴 데서 사람들 주의 좀 끌고 있어.” 나는 그 지시에 충실하게 따랐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손님들을 응접실로 끌어모아 아카데미의 일화를 한참 들려주었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세자르.” 카렌이 내 곁에 오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임무 완료.” “···역시 넌 최고야.” “최고란 말 아무렇게나 하지 마.” 앙칼지게 쏘아붙인 카렌이 먼저 자리를 떴고.
“저도 그럼 이만.” 나 역시 일어나 응접실에서 나갔다.

*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앨빈과 나는 발닉과 디터가 함께 묵는 방에 와 있었다.
디터는 문가를 지키는 중이고, 발닉은···.
“준비됐어?” 가슴 위에서 두 손을 맞잡은 경건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말에 발닉이 고개만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상당히 긴장한 모양인데.
“훈련을 충분히 했으니 잘될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입을 열 염두도 안 나는지 또다시 끄덕, 하는 발닉.
그때, 바깥에서 동정을 살피던 카렌이 들어왔다.
“목표물이 도착했어. 지금 계단을 올라오는 중이니, 10초 후면 우만의 방으로 들어갈 거야.” “좋아. 10초 세고 바로 시작한다.”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자, 발닉이 꿀꺽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삼킨다.
“10.” “9.” 숫자를 세어나감과 동시에 발닉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걱정 마세요, 발닉 아저씨.” “발닉 경, 긴장하지 마시고···.” “그래요, 발닉 경은 잘할 거예요.” 나머지 세 사람의 격려가 무색할 정도로 발닉의 손이 달달 떨렸다.
나는 입안으로 혀를 찼지만, 티 내지 않으며 숫자를 계속 셌다.
“···5.” “4.” “3.” “2.” ···마침내 1을 외친 순간.
발닉의 눈꺼풀이 저절로 뒤집어지더니.
“···!” 드러난 눈동자, 아니 눈알 전체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헉.” “꺅!” 충격적인 광경에 디터와 카렌이 작게 신음한 반면, 앨빈은 침착한 반응이었다.
이윽고 내 눈앞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가신 ‘발닉’이 동물 빙의에 성공했습니다.] [대상체 ‘모기’와의 동화율 100퍼센트] [남은 빙의 시간 5분] 그렇다.
지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자작가에 도착한 직후, 이곳 하인에게 뒷돈을 주어가며 이런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브렉 헬리오스 님이 모레 오전 중에 우만 님을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그것을 듣자마자 나는 디터와 발닉에게 전서구를 보내 ‘문제의 그것’을 가지고 자작가로 오라고 지시했다.
어젯밤에는 우만과 단둘이 대화하며 분란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브렉과 타릭 중 한 명이, 모종의 거래를 요구하며 내게 네 약점을 넘겼다면?’ 우만은 최근 브렉이 나와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으니···.
‘오늘 만남에서 그 얘기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발닉이 들고 온 ‘문제의 그것’이란 바로.
“세자르, 네가 부탁한 대로 우만의 방문을 따고 그 안에 모기를 넣어두긴 했는데···.” ···모기였다. “모기가 진짜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 맞아?”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모기는 인간 음성에 해당하는 영역의 목소리에 민감하다.
‘귀가 아니라 더듬이의 털로 공기 진동을 인지해서 듣는 거지만.’ 10미터 이내라면 작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까지 들을 정도라고 하지, 아마.
“확실하니까 걱정 마, 카렌.” 그보다 나는 발닉이 성공적으로 귀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지만.
훈련에 매진한 덕분에 숙련도가 부쩍 오른 데다, 모기처럼 지능이 낮은 생물일수록 빙의 지속 시간이 길어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은 빙의 시간 20초.] [남은 빙의 시간 10초.] 다행히 그는 여전히 눈을 뒤집은 채 무사히 대상체 모기에 접속해 있는 중이었고.
[남은 빙의 시간 5초.] [4, 3, 2··· 1초.] [빙의가 종료되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뜨기 무섭게.
“···헉!” 발닉이 솟구치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발닉 아저씨!” “괜찮으세요?” 허억, 허억.
발닉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들었습니다.” “듣다니?” 발닉이 창백한 얼굴로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놈들의 대화, 다 엿들었단 말입니다.” 내 입에서 아, 하고 감탄성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근데 브렉의 말로는 우만이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는데요?” “뭐?” “본명은 레온 드 빈터라고 하던데.” 우만이 가명이라니 금시초문이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앨빈이 벌떡 일어섰다.
“빈터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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